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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山&트레킹 ▒/▶중국(백두산외)

[백두산]선양(심양)-심양의 서탑 한인거리-송강하숙박(2016. 7.30)첫째날

by 물안개(권영미) 2017. 6. 1.
06:00 인천공항 A19 카운터 집결... 곳곳에서 오시는 분의 첫차가  빨라야 04시30 출발이라서...여름휴가철 공항이 북새통인줄 알면서도 그 시간 집결을 해야만 했습니다.
심양으로 출발 시간은 08:05  적어도 3시간전은 도착해야하는데 말이죠. 암튼 ...부리나케 수속을 하여 ... 탑승시간 20분전까지는 모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워낙 정체현상이라 비행기도 조금 늦게 이륙하였지요. 
대한항공 831편은 중국땅 심양에 10시 10분경 도착하였고 입국수속을 마치고 중국땅을 밟으니  현지가이드(성함 이성희)와 미팅하였습니다. 여잔줄 알았는데 남자였죠.


첫날 일정은 공항에서 버스이동   서탑주변 한인거리 관광..그리고  식사...일정은 통화숙박인데 통화에서 숙박 안하고 백두산아래 송강하까지 오늘 바로가는 일정으로 버스이동시간이 장장 6시간이죠.  원래 일정표와는 달리 현지사정에 의해 또는 시간적으로 볼 때 변경되는 일정입니다. 




일단 심양에 대해서 잠시 알아볼까요~
심양시는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갖고 있는 옛도시이다. 7200년전에 이미 신락문화(新樂文化)가 형성되어 이곳 무연한 천리벌에 인류가 생존하여 지금의 신락유적지를 남겨놓았다.
   심양시의 도시 이름은 중국역사의 서한시기는 후성(候城), 당조때는 심주(瀋州), 원나라때는 심양(瀋陽), 청조때는 성경(盛京), 일제시기에는 봉천(奉天)이라 불렀고 광복후에는 다시 심양으로 개칭했다. 중국에서는 강의 남쪽을 음(陰)이라 하고 강의 북쪽을 양(陽)이라 한다. 심양은 심수(지금의 혼하)의 북쪽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심양이라는 도시 이름을 짓게 되었다.


   심양시에는 신락유적지, 북릉, 동릉, 고궁, 9,18역사박물관, 동탑, 서탑, 남탑, 북탑이 세워져있고, 석대자 고구려 산성 유적지 등이 있다. 서탑과 그 주위를 서탑지역으라고 부르고 있다. 서탑은 원래 청조초기에 심양의 동, 서, 남, 북 4곳에 세운 4개 탑중의 서쪽의 탑을 가리키는 탑 이름이다. 이 4개 탑밑에는 4개 절이 있는데 동탑은 영광사, 서탑은 연수사, 남탑은 광자사, 북탑은 법륜사, 이를 4탑4사라고 한다.


   4탑4사를 세우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누르하치는 1625년에 후금의 수도를 요양(遼陽)으로부터 심양에 천도했고, 황태극은 1636년에 청나라를 세우고 도음(심양)을 성경(盛京)이라고 개칭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도읍에는 반드시 황궁이 있어야 하고 황궁이 있으면 반드시 천제를 제사하는 제단이 있어야 하며 제단이 있으면 반드시 4개 탑과 8문8관이 있어야 한다. 심양의 지형은 봉황새가 나래를 펼치는 모습인데 봉황새는 마스코드이므로 4탑4사를 지어 봉황새가 날아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누루하치로부터 시작하여 황태극에 이르기까지 풍수지리설에 의해 심양시에 토목건축을 크게 벌이였다. 심양 외곽에 4개 탑을 쌓고 절을 지었다. 탑의 높이가 30메터, 탑몸은 타원형으로 쌓고 색은 흰색, 탑안에는 식량, 경문, 황금을 저장했다. 이것은 나라가 부강해지고 문화가 발전할것을 기원한다는 상징물이다. 탑위의 상륜부분에는 구리로 해와 달, 앙련좌를 만들어 기념비의 특색과 장식특색으로서 그 시기의 건축수준을 보여주었다.    기실 4탑4사는 누르하치와 황태극의 위세를 사방에 떨치며 천하를 통일하려는 결심을 보여준것이다.


조선인들이 심양시 서탑부근으로 모여들기 시작한것은 19세기 70, 80년대부터인데 맨먼저 들어온 사람은 기독교 신도들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1882년부터 1887년간에 조선인 서상륜(徐相崙), 백홍준(白鴻俊)이 서탑부근으로 들어와 조선문 "성경"을 출판하였다. 19세기 중엽으로부터 조선 이지민들이 심양지구의 혼하, 요하, 포하 양안으로 천입하여 벼농사를 지으며 서탑지역을 중계지역으로 삼고 내왕하면서 모여들었다. 1900년 5월에 조선 평안북도 녕성군의 농민 안봉태가 서탑밑에 집을 잡고 중국인 왕씨와 장사를 하였고, 1901년에는 조선기독교회의 백목사가 서탑지역에 와서 전도했다. 1910년 일제가 조선을 침략하자 조선인들은 중국으로 많이 망명해왔다. 그때 서탑지역에 정착한 조선인은 50여가구, 200여명이나 된다. 1912년 안봉선(安東--奉天)철도가 개통되자 서탑지역에는 화물 적재고가 있었고 교통이 편리하여 장사하기 좋은 곳이었으므로 조선인들이 떼를 지어 서탑지역으로 천입해왔다. 그리하여 서탑을 중심으로 1910년대 조선인들의 집거지역으로 형성되었다.

 

 

 

 

 

10:00 (현지시간)

 

왕기사

 

모택동 (가르키는 손은 자금성을 향해 가르킨다고합니다)

어느 도시든간에 동상의 손은  그렇다고 합니다.(달리는 버스안에서 촬영)

 

한인거리 도착하여 상가를 쭈우욱~~ 걸어갔다 옵니다.이곳에서 과일도 사고.....30분 소요

 

북한의 식당앞에 홍보여인... 사진 찍지말라고 합니다

 

서탑은 조선족 중학교 옆에 위치하고....바로 한인거리 옆입니다

 

서탑은 들리지않았지만...일단 인터넷에서 퍼왔으니 한번 보시고.. 한인거리는 밤문화가 즐거운 모양입니다.음.. 다음 일정엔.... 다시한번 체크 해봐야겠네요~^^마지막날이 심양에서 숙박을 하고 이거리를 자유롭게 배회할 수 있게~ ^^*

 

12시40분경 식당 도착

 

식당입구 메뉴

 

12:30 출발~~ 송강하로

 

달리는 고속도로 양쪽으로 옥수수밭

 

도중 휴게소   14:40

 


휴게소 매점

 

버스는 45인승으로 출입문이 두개 중간에 하나 더 있다.

 

이것은 비상시  접이식 화장실이라고

 


휴게소에서 중국인의 애완견 ㅋ

 



 

고속도로 달리면서  보이는 이런 마을

 

송강하 도착.. 바로 저녁식사 (18:20)

 

식사하고 주변 재래시장

 

시장에서 호텔은 버스로 5분 거리

 

2인1실.... 호텔내부.. 겉은 허름한데..리모델링 한것 같다.침구도 깨끗하여 좋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