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토피아 -
백두산 산행일지 본문
산 행 코 스 |
송강하-5호경계비-옥주봉-마천봉-청석봉-장백산(최고봉)-녹명봉-용문봉-소천지(선두8시간-중간 9시간-후미10시간30분) |
일 자 |
2005년 8월 5일~10일(5박 6일) |
날 씨 |
산행당일 쾌청 |
참 여 인 원 |
56명(토지개발공사35명/한마음산악회13명/개인 - 가이드포함) |
첫째날~둘째날(8월5일~6일) 백두산간다고..하루 전 날..산악회식구들이 환송한다고 모였다.괜시리 송구스럽기도 하고..아무튼 여러분의 정을 듬뿍 담은 용돈도 받고..가족이 없어도 부럽지 않은 나
떠나는 아침..10시20분 시외버스터미날에서 버스는 어김없이 정각에 출발하는데...핸드폰 벨이 울린다..하늘이었다.. 언니~~떠나는거 보려구 왔는데...버스가 마아악 떠나네~~
일부로 달려나온 그녀의 마음이 어땠을까...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온다.그녀의 마음을 헤아리니 안타까운 마음에 잠시 흥분이 된다.
버스는 가평을 거쳐 청평터미널에 도착하니.. 예전 하늘이 회오리와 호명산가서 하산을 잘못하여 우째우째 청평터미널까지 오게된 사연.. 그리고 제과점에서 버스 기다리며 팥빙수 먹던 그때가 떠 올라서 남몰래 베시시 웃어보는데...
초등학교 4학년짜리가 바로 내줄에 앉는다..친척인지..이 아이를 안양 @@ 예식장앞에 내려주세요~~ 운전기사님에게 당부를 한다.사내아이었다.
그 아이를 보니 내어릴적 생각이 난다. 나도 방학때면 친척집에 나홀로 버스를 타고 가던 그때..그러면 어른들은 혼자가니? 물으면서...어린 것이 혼자간다고...대견해하던..그 사내아이를 보면서...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청평을 빠져나와 경춘가도를 계속하여 달리던버스는 어디선가 안양으로 달리는 고속도로로 올라탔다.그때부턴가 잠에 들고..간간이 눈을 떴을땐...낯선동네를 달리고..문득 사내아이를 안양에 내려주어야하는데..운전기사에게 말했더니 아직 안왔다고 한다..잠들던나는 운전기사도 잊어먹고 지나쳐 버린줄 알고...괜한 걱정거리 하나를 안고 가던 나는 안양을 지나서야...편하게 갔다..인천터미널에 도착하니 오후1시가 조금 넘었다.
새로 생긴 인천종합터미널이다.관교동이라하며 바로 지하철과 연결되어있다.연안부두에 있는 인천항 제1국제터미널을 가려면 인천역 아니면 동인천역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 터미널에서 지하철을 타면 6정거장 가서 부평역...부평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인천역(9정거장)까지 간다.인천역앞에서 28-1번 버스를 타고(25분) 연안부두 제1국제터미널에 도착.
시간은 오후2시40분..기막히게 집결시간에 맞추어서 도착했다.이미 서울산친구들은 와있었고..북적대는 터미널안은 모두가 기대에 찬 흥분의 도가니속이며 활기에 찬 모습들이다.
안내대장이 비자수속을 밟고 있는 중 간단히 김밥을 사먹고 환전을 하려하니 중국돈이 다 떨어졌다고 현지에서 한국돈도 받는다하며 안내를한다.
시간이 되어 출국수속을 밟으며 승선을하는데..공항처럼 버스를 타고 배가 있는곳까지 간다.(17시)
단동행 이라는 배는 몇톤인지는 모르지만 정말 괜찮을까..할 정도로 오래된 배였다.어디 으슥한 선착장에 창고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좌석을 찾아 짐정리하고 앉으니..역시 여행길은 즐겁다..대장이(여자다) 오고.. 오늘밤과 내일의 일정을 안내한다.
17시30분에 식사를 하고(닭튀김한조각/김치/배추국/반찬2개) 갑판으로 나갔다. 황해바다 한가운데 서있기는 난생처음이다.배 아래를 내려다보는데..가슴에 끼어둔 썬그라스가 그만 바다아래로 날아가고 있다.(이구~ 속쓰려라~18만원이 날아갔다)
하긴...무사히 배가 도착하도록 용왕님께 제물받쳤다 생각하자...라고.. 위안을 삼고 일몰의 순간을 기다리며 갑판에 앉아 끝없는 푸른 바다..황해바다를 실컷 바라본다.아직은 섬들이 눈에 띄이고...그 사이로 햇살이 비친다.. 언제 어디서 일몰을 할지...어떤장면이 좋을까...그렇게 일몰의 순간까지 갑판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자리에 돌아왔다.여기저기에서 모여앉아 간단한 축배를 부딪힌다. 우리도 준비한 술로 백두산행을 자축하며 건배를 했다.그렇게 조촐한시간을 보내고 모두 잠자리에 앉아 먼저 자는사람 재잘되는사람..각자의 시간을 갖는다..배안에는 샤워장도 있고 뜨거운 물도 잘 나온다.
배안의 등불은 12시가 되어야 소명한다.그리고 밤 9시를 기해서 중국시간으로 1시간 빠르게 된다.(예를들어 한국시간 9시면 중국시간은 8시)내일을 위해 취침에 들었다.
이튿날이다.. 일출을 보기위해 갑판으로 나갔다. 시커먼 바다 수평선에 짙푸른 보라빛깔의 구름... 그사이로 붉은빛을 띠며 서서히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일찌기 바다 한가운데에서 일출을 본적은 없었다.
더욱이 백두산을 향한 오늘의 붉은태양의 일출은 뜻깊은 일출이 아닐 수 없다.언제부터 나는 이러한 의미를 새기며 살아가고 있었는가...내게도 이런시간이 주어지기도하는구나...하는 행복감과 한켠에는 무상의 허상...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야릇한 마음이 교차하면서..일출을 담기위해 손을 뻗쳐 카메라를 들고 동쪽을 향해 굳게 서있었다.
일출을 담아 자리로 돌아와 조식을 먹고 다시금 갑판으로 나갔다.중국특유의 안내간판이 커다랗게 선착장입구에 하나 하나 세워져있었고..그제야..중국땅이로구나..실감을 하게 된다.
09시가 지나서야 하선준비를 하고 줄지어 기다린다...사람보다 짐이 더 많은 것 같다.장사치들의 한국물건들을 나르는 엄청난 물량의 보따리 때문에 더욱 하선이 늦어지는 것 같다.그리고 후진국의 일처리에 아연질색을 할정도이다.
단체비자란 1조에 14명씩인데 비자순으로 줄지어서야했고...입국수속도 엄청 늦어진다.우리일행은 1조14명으로 4조까지 있었는데..나는 4조이다.여기서 한마디 단체행동에 있어서는 확실히 행동이 빨라야한다. 그리고 조장에 귀를 잘 기울이고 행동개시..어떤조는 한사람 때문에 아무리 빨리 나가도 기다려야하고...하여간 어디든 그런사람은 꼭있다.
11시쯤 수속을 마치고 4조가 제일먼저 대합실에 나갔지만.. 뒤에 오는 조들 때문에 1시간가량을 기다려야만 했다.12시가 넘어서야 버스를 타게 되었고..버스는 30인승 2대로 이동하며 나는 2호차이다. 에어콘은 있지만 시원하게 잘 안나온다. 선착장에서 1시간30분가량 이동했나?단동이라는 시가지에 있는 북한식당이란다..
한식으로 점심을 먹고...통화라는 곳으로..다시 버스를 타고가는 도중.. 고구려광개토왕비와 장수왕의 돌무덤 장수총을 관광한다고 한다..단동에서 한 5시간 정도 달렸나보다..
집안시(中國 吉林省 通化專區 集安市)의 시청소재지인 통구성(通構城)으로부터 동북쪽 약 4.5km 지점인 태왕촌 대비가(太王村 大碑街)에 광개토왕비가 있는 관광지 주차장에 내리니..날은 어둑어둑 땅거미가 깔리고...낯선땅에 더욱 썰렁한 기분이다.
부지런히 걸어들어가 광개토왕비앞에 서니...형체만 보일뿐 알 수가 없다.다음 장수왕의 무덤 장군총에 들려본다..솔직히 내게 있어선 큰의미는 없다..그저 둘러볼 뿐이다.다만 나라의 역사 그 오래전 천몇백년전에 그곳에 우리가 서 보았을뿐이다.
다시금 집안시로 나와 저녁을 먹고 오늘밤 묵을 통화시까지는 약2시간걸린다한다.그렇게 또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 통화시 휘풍호텔이다.밤11시 쯤인가...씻기가 무섭게 금방 잠에 들었다..내일 새벽02시30분에 기상하여 백두산으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세쨋날(8월7일)
일요일 새벽2시경 모닝콜로 깨워준다...2시간이나 잤을까..몸단장을 하고 짐을 챙겨 버스에 싣고 아침식사를 간단히했다.
드디어 백두산행... 새벽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날씨는 맑을 것 같다.통화호텔에서 03시30분 2대의 버스가 아직은 고요히 잠든 통화시를 떠나 어딘가를 향해 달린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버스의 종점인 송강하로 간다라는 것외 알길이 없다..그저 버스에 몸을 맡기고...부족한 잠을 청해본다.
날이 훤해오면서 앞차 1호차가 한번 정차한다..운전기사가 차량엔진을 열어 먼가를 점검...괜찮나?...그러다가...괜찮은건지 그냥 또 달린다..
앞차가 섰다..결국은 고장이란다..부품을 갈아야한다는데...찻길로 모두 나와섰다.40여분이 지나서 가지고 온 부품이 맞지 않는단다...다시 또 기다려하고.. 기막힌 나머지 모두는 웃고 만다..
기다리는동안 여기저기 낯선 땅의 풍광도 시골집도.. 장터로 물건 팔러가는 마을사람도...그저 보기만해도 흥미롭고 재미있다.
그렇게 일행들은 큰 불평없이 조용히 차를 고칠 때까지 찻길에서 나름대로 시간을 보내며 기다려주었다.약 1시간30분이 지나서야 버스는 움직이고 부지런히 송강하를 향해 달린다.(오전6시경)
백두산으로 가는 벽촌길은 산아래 광대한 옥수수밭과 지붕은 한결같이 벽돌색이며 온화한 분위기로 언뜻보기에는 잘사는 집같이 보이지만(중국에서의 지붕색깔이 붉은 것은 복을 불러온다라는..그리고 황토자원이 많은 이유라함 )...사실은 빈집같이 보일정도로 빈곤한 생활이란 것을 한눈으로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문명으로부터 동 떨어진 그야말로 우리나라 60년대의 시대를 연상케한다. 물론 처음안 사실은 아니지만..새삼 다시금 내가 그곳에 있음에 타임머신을 타고 있는 기분이었다.결코 낯설지 않은 이시대의 중국이란 나라가 그렇게 향수를 느끼게 해주었다.
자동차길은 동물농장이기도 할 정도로 마구잡이로 무단횡단을 한다.. 소떼...양떼..오리떼...거위떼..닭..병아리..말..정말 재미있다..동물을 좋아하는 나는 너 무 이쁘고 귀여웠다.
그리고 모두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뒷칸에 앉아있는 나로서는 촬영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진작 앞에 바닥이라도 앉아서 갈걸그랬나 하고 못내 아쉬운 마음이었는데 그래서 돌아오는길에 딱한 장 별러서 찍었다.
백두산가는 길에 또 하나 아쉬웠던 것은 어느 작은마을을 지나는데..마침 일요일이라서인지는 모르나 우리나라로 말하면 장을 서고 있었다. 만두..호떡..과일등..차창 밖에서비쳐지는 음식들이 먹음직스러웠다. 좀 세워주지는 않나?했지만 바라만 보면서 마을을 지나버렸는데...아직도 그 장터가 눈에 선하다.
이윽고 송강하에 도착했다 오전10시..산행시작이 예정보다 2시간 가량 늦어졌다.입장료를 내고 허가를 받아야할 매표소에서는 버스에서 사람들은 내려야하고 한사람 한사람 체크하여 입장후에 다시금 버스를 타고 백두산 들머리까지 간다.
들머리에는 이미 일찍부터 온 관광버스가 즐비하게 찻길가에 서있다.더 이상 오르지 못하는 버스는 주차장까지 못가고 중턱에서 모두 하차했다.
그리고 점심에 먹을 식수와 도시락을 나누어준다. 그잖아도 늦어진 시간에 진적 버스에서 나누어주었더라면 시간절약과 번거로움을 피했을텐데...사실 좀 짜증이 났지만...백두산에 온 기분에 오르기가 바쁘다.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찻길 아닌 산꾼들이 만들어논 질러가는 길로 모두는 부지런히 산행을 시작했다.선두는 이미 저멀리 가고 있었고..나는 야생화에 발길이 묶여 조금은 지체된다.
천지의 능선이 한눈에 보인다. 저높은 백두산의 고지..
내어머니의 고향과 가까운 북녘하늘 북녘땅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돌아가신 어머니의 기쁨이 나를 통해 미소진다.
마지막 천지의 오름은 1,300여개의 계단으로 되어있어 남녀노소 장애자 할것 없이 쉬엄쉬엄 오를 수가 있다.오르지 못하면 인력거도 있다.그렇게 백두산천지의 신비하고 장엄한 모습은 누구에게라도 개방되어 있었던 것이다.
반쪽의 백두산도...언제고... 오를 날.. 있겠지..생각하면서..설레이는 마음으로 천지의 능선에 한발자욱 내미는 순간...한폭의 그림을 보는 듯 했다.. 어디선가 낯익은...무수한 세월..사진으로 익혀보던 그 장면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정녕~ 나는 백두산 그곳에 서있는 것인지...멋있다라는 말을 하기 전에..그저 침묵이 흐른다.
그것은 나뿐은 아니었으리라...그렇게 멋있다고 떠드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가슴에 아로새기는 그 기쁨과 환희..천지를 바라보며 모두는 무엇을 기원하며 소망했을까~자랑스런 조선의 땅..산이여~천지여~불변 영원하소서.
천지의 건너편 북한의 장군봉이(높이2743m) 우뚝 그 모습이 두드러지게 보인다.그리고 그 옆에 높고 낮은 봉들의 모습이 웬지 친근감이 가고 우리들을 바라보는 듯했다.
※여기서 간단히 백두산에 대해 알아보자.
▶화산폭발로 개마고원이 생김 ▶백두산은 최소한 4차례폭발로 추정 ▶마지막폭발은 1000년전인데 이 때에는 주로 부석이 분출되었는데 백두산에는 아직도 그 때 타다 남은 숯들이 남아 있다. (산까페에 한조각 있음다--^^) 물이 흘러가는 출구인 달문방면에서 시작하여
1 천활봉(天豁峯 2,620m)
북한과 중국간의 협상에 의하여 천지의 2/5는 중국측이, 3/5은 북한측이 관할하고 있다. 즉 북한측이 관할하고 있는 수역은 동쪽 망천후에서 서쪽 제운봉까지 이어지는 직선거리의 이남수역이다.
그러니까 백두산 가운데 동부,남부, 서부에 해당되는 불류봉, 망천후, 고준봉, 삼기봉, 복룡봉, 백두봉, 관면봉, 와호봉, 제운봉이 북한 관할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백두산은 곧 백두봉(장군봉)을 지칭한다.
천지에서의 감상은 그렇게...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다. 가자~ 선두가 다음 옥주봉을 향해 가고 있다.천지에서 왼쪽으로 산허리를 돌아간다.. 일행 중 한분이 배고프다고 점심을 먹고 가잔다.
첫 번째 봉에서 먹자는데..그래도 못참겠다한다.선두는 가버리고 우리 일행은 후미를 기다리기 위해서라도 자리를 폈다.배급받은 도시락은 하얀쌀밥에 김치 깍두기 고추3개 고추장이었다.힘을 내기 위해서라도 반찬 타박하지 말고 어떻게든 먹어야했다.
30여분 점심시간을 가진 자리는 야생화천지다..잘못하면 내 발길에 밟히지나 않을까 할 정도이다.
이제 본격적인 종주길에 올라섰다. 20여분 오르니 다시금 천지가 보이는 첫 번째봉에 도달했다. 선두는 그곳에서 점심을 한 모양이다.
옥주봉에 오르니..백두산 분화구의 모습이 더욱 완연하게 보인다..봉봉이 여러형태의 모습을 가진 분화구의 모습이란..정말 그때 그 폭발당시를 한번 상상해본다.그래서 생긴 저 들쭉 날쭉.. 지그재그.. 칼날같이 째진 모습등...그러면서도 몇천만년 저렇게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걸까...그야말로 하늘이 주신 자연의 선물이...이 지구상에 그리고 조선땅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고마운 생각이든다.
망설이다.. 그리고 멀리 멀리 고생하며 온 보람과 보상을 이 한순간에 몽땅 차지한 기분이다.백두대간을 종주하고 마지막 백두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이보다도 더욱 감회롭지 않을까하는 생각도해본다. 다시한번 그들에게도 북한을 통해 백두산을 오를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라는마음이다.
이젠 각 각.. 삼삼오오로 산행을 한다. 나는 사진촬영 때문에 저절로 혼자산행을 하게 되었는데..그러다가 몇사람과 합류하고 떨어지고..그렇게 백두산 분화구의 모습을 맘껏 바라보며 모두에게 가장 실감나는 장면을 담기위해 하늘 땅 천지아래 천지주변등을 살폈다.
안개가 드리워지면...가장 아름답게 퍼져가는 안개모습을 담기위해 그 자리에 지체하기도하며.더욱 오랫동안 머무르고싶은 충동을 억제하며 다음을 향해 계속하여 전진했다.
청석봉에 도달했다. 청석봉에서 백운봉은 바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청석봉에서는 왼쪽으로 하산하는격이다. 한 20분을 하산하면 천지에서 흐르는 계곡물을 만난다. 모두 그곳에서 그간의 격분을 가라앉히며 휴식한다.나도 신발을 벗고 발을 담가보는데..10초도 넘길 수 없이 차갑다.
계곡물을 건너 다시금 오르막이다.등로가에는 야생화로 만발하여 지루함이 덜하다..등로가 없었을 때는 온천지가 야생화였을텐데......하여간 인간의 욕심 때문에...쩝~ ^^
여기가 가장 힘든코스인 것 같다. 그동안은 분화구 능선을 따라 걸었지만..하산하여 다시금 오른다는 것이 아마도 모두에게 힘들었던 코스일 것이다.
40여분을 올라서면 능선에 또 더 올라서 마지막 분화구 능선을 오르게 된다.다음이 금병봉 중국 장백산에서의 최고봉 (2737m)이다. 그곳에는 빨간 깃대봉이 꽂혀있다.이 봉에서는 오르지 않아도 우회길이 있었고...나는 우회했다. 천지를 둘러싸고 분화구 봉봉의 모습은 거의 비슷한 장면이었고 산행만도 6시간을 천지를 보며 종주하게 된다.이제 하산길에는 앞서가던 서울에 산친구와 동행하게 됐다.
용문봉을 지나 천지를 뒤로 한 본격적인 하산 길은 분화구 능선에서부터 가지런히 뻗어내린 고원의 차밭 같았고...능선에 맞닿은 새하얀 구름은 일찍이 보지 못했던 동화속의 광경이었다.
좀 더 내려가면 왼쪽에 지난 겨울의 잔설이 아직도 녹지 않고 있었고 천지로부터 흘러내려오는 물줄기가 하얀 폭포하나를 만들어 그림같이 흐르고 그 주변에는 색색의 야생화로 낙원의 분위기를 연상케했다. 그리고 좀 더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장백폭포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아~ 이것이 유토피아가 아닐까....^^
날이 어두워져간다.. 후미는 잘 오는 것이겠지...금방 산아래 호텔이 보였지만.. 아직도한참을 내려간다. 좀처럼 종점이 보이질않는다.그래도 등로에 핀 야생화에 정신을 뺏긴다.소천지가 가까워오니 이내 땅거미가 깔려 어둑어둑해진다.웬지 지금까지 아름다웠던 감동은 사라지고 두려움이 엄습해온다.그것은 내가 아니고 뒤에 오는 여러분들의 걱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천지에 도착하니 소천지를 둘러싸고 서있는 하얀 자작나무가 소천지에 거울처럼 비추어져 있었는데 청송의 주산지와 비슷하다. 너무 컴컴해서 아쉽게도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다.소천지에서 어느 방향으로 나가야하나 둘러보고 있는데 선두로 가셨던 베로니카님..상애가 기다리고 있었다.
소천지에서 5분정도 나가면 장백산호텔로 들어선다. 대장이 로비에서 기다리며 인사를 한다. 방 배정을 받아 배낭을 풀고 다시 로비로 나갔다. 온천장도 있고해서 우리는 온천하기로 했는데..
후미가 아직 미도착이다.우리 일행은 얼마후 도착했지만 토지개발공사팀중 다리가 풀려 고생하는 사람이 있다한다..이미 캄캄한 밤 8시가 훨씬 넘은 시각..랜턴을 가지러왔다. 우리팀에서 3개를 빌려주고....사건발생으로..식사시간이 늦어졌다.후미까지 기다리기엔..하여 우선 호텔에 도착한 사람들만 부리나케 식사를 하고 온천을 갔는데....
온천비가 12,000냥이란다. 그런데 룸에 샤워가 안나오는 팀은 온천이 공짜라는데...우쒸이~~우리도 샤워하다가 물이 안나와 도로 나왔는데...12,000냥 벌려고 후론트에 가서 따졌다...생략하고 우짜든 공짜로 하게 됐는데...온천장이라고 어디서...초등학교 다닐 때 엄마따라 갔던 목욕탕수준이다.
어두컴컴한 서너평정도일까 탕하나만 있을뿐이다..그런데 12,000원..완전히 칼만 안들은 날강도다.. 다행이도 공짜니 망정이지 억울할뻔했다.
물은 좋았다.언능 씻고 방으로 돌아와서 발 맛사지를 받았는데..17,000원 오늘의 피로가 확 풀렸다.
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일 새벽2시에 기상하여 장백폭포 천지 달문 트레킹 3시간짜리인데 가겠냐고...우린 천지 실컷보고 왔는데.. 모두 안간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날밤 새벽 2시에 일어나 7시간 버스타고 산행 9시간하고 또 내일 새벽2시 기상이라니 누가 간다하겠는가..천지라도 못봤다면 그래도 기를 쓰고 가겠지만..하여 취소했다
네째날(8월8일)
05시30분에 기상하여 아침을 먹고 06시 출발 이도백하역으로 버스로 이동 1시간...역앞에서 기차시간 기다리며 가게에서 과일등을 사먹으며 장사치들과 흥정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이도백하역에서 송강하역까지는 2시간20분거리 송강하역에 우리들의 전용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구면이라고 운전기사가 반갑게 맞이한다 ^^ (오전11시경)
송강하에서 무송을 거쳐 통화시에서 한식으로 점심식사를 했다.그리고 바로 출발 고구려의 첫번째 수도라는 환인을 향해가는데 비가 오기 시작한다. 비가오는 관계로 오녀산성을 조망하기로 한 일정은 취소하고 길가에서 올려다만 보았다. 청산리 청산골에 있는 여진족 후예들이 산다라는 여진족민속촌에 도착했다.(오후8시경)빨간야등으로 장식을 한 민속촌의 분위기는 일단 화려하고 좋았다.방 배정을 받고 바로 민속예술공연장으로 갔다..
먼말인지는 모르지만 사자탈춤은 우리나라와 똑같은 민속춤이었다. 약 50분정도 공연을 관람하고 저녁식사장으로 갔다. 양고기라하는데..전혀 입에 맞지 않아서 못먹었다.식사를 하며 노래자랑시간이란다.
우리나라 노래방 설치가 되어 있었고...우리팀 대표로 불려나가 목로주점 한곡을 불렀다. 여진족장이라는 털보가 꽃다발을 주어 모두에게 놀림을 받고 그래서 또 한 바탕 웃는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 (이럴땐 좀 신나고 흥겨운 곡명 선택이 좋다 ^^)
밤 11시가 지나 우리들은 방으로 돌아와 짐정리하고 또 내일을 위해 금새 잠자리에 들었다. 또 새벽에 기상해야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날(8월9일)
05시 기상..어제는 늦은 관계로 민속촌 주위를 보지 못했다. 짐 챙겨서 버스에 싣고 주변경관을 둘러보러 나갔다. 들어오는 입구에는 다리가 놓여져 있고 그 아래 강물이 흐른다.색색깔의 깃발이 성곽에 꽂혀있고...어디를 둘러봐도 산과 들판이었다.
05시30분이 되어서야 식당문이 열렸다. 옥수수죽과 옥수수빵등...그런대로 먹을 만하였지만 다른 것은 아니었다. 가지고 간 컵라면 2개가 인기였다.역시 라면스프는 우리들의 입맛에 맞는다.
식탁에 오른 옥수수빵을 챙겨넣었다.땅콩도 있었는데..그것은 맥주안주로서 그만이다.땅콩도 챙겼다.
식사가 끝나고 주차장으로 나가니 아주머니들이 농산물을 팔고 있다.산다기보다 구경꺼리이기에 모두 둘러본다.어떤 아주머니는 가래를 까고 있었고..잣..버섯..인삼..등등 펼쳐져 있다.가래가 괜찮겠다싶어 나는 가래를 샀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기쁨을 주기 위해서..1키로인가 우리나라 돈으로 3,000원이었는데..2키로를 샀다.
쇼핑을 마치고 버스에 올라탔다.07시20분 이제 단동항으로 배를 타러가는 마지막 여행길이다.민속촌을 빠져나와 다음은 만리장성의 최동단기점인 호산장성에 들려 관광을 한다고 한다.
3시간정도 소요된다고하는데...날씨는 간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딘가 오르막길을 가는데 버스가 갑자기 정차한다..이유인즉 앵꼬라한다. ㅎㅎㅎ 하여간 모두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떻게 관광버스가 앵꼬가 되도록 달리는지..운전기사 왈~ 자기차가 아니고 회사차라서 모른다는데..계지기가 고장났다고한다.
먼저 간 앞차 1호차에 연락을 하고 1호차가 기름을 사서 한 30분후에 도착했다.기름을 넣어도 금방 시동이 안걸린다..에어를 뽑아야한다나~머라나~1호차 기사도 함께 열심히 쭈물떡 거리더니 30여분만에 시동이 걸렸다.. 걱정하며 지켜보던 모두는 박수를 친다.
이거~ 중국오더니 어느새 적응되어가는가보당~ ㅋㅋㅋ 천지를 실컷보더니 머 마음씀씀이가 후해진 것 같다..아무튼 불평불만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주유소는 고장난 거리에서 다행이도 얼마 안가서였다. 들통을 주고 나머지 주유를 하는동안 화장실 가라고 휴식시간을 주었다.
그런데 주유소에서 몇발자국 안가서 어느집에 먼 잔치를 하는가보다..나는 사진을 찍기위해서 달려가보았다. 처음엔 결혼식이라는 말이 들려 그런가보다 했더니만 그것이 아니고 노인의 88세 잔치였다.
가마솥에 양고기인가 먼가 고기가 펄펄 끓여지고 있었고...양파 피망 파 두부부치기등 우리수준으로 본다면 지극히 조촐한차림의 팔순잔치였다.그러나 그들의 잔치는 얼마나 기대하고 고대되는 잔치였을까..너무나도 낭비많은 우리나라 음식장만에 깊이 생각해야겠다.
그리고 이게 웬 횡재..중국의 팔순잔치를 이런곳에서 체험하다니..결국 앵꼬난 버스로 전화위복인셈이다.사진을 찍고 돌아나오는데..이젠 모두 잔치집으로 구경하러온다.부주돈을 내놓고 어떤분은 방명록에 이름까지 적었다한다.그렇게 버스앵꼬로 보너스관광을 하게 되었다.(사진참고)
호산장성에 도착했다. 비는 내리고...그래서 장성으로 오르는 것은 취소하고 일보화에 먼저 들렸다. 개천같은 강하나 건너땅이 북한땅이라고 하는데 초소에 북한군인들이 포카를 하고 있었다.여기서는 함부로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고한다.들키면 사진기 압수당한다고..다만 일보화라는 표지석앞에서는 허용한다고하여 모두 기념촬영을 했다.
나오는 길목에서는 장사꾼들이 과일 옥수수등을 팔고 있었다. 팔아주고 싶었지만 중국돈이 없었다.그리고 한국돈이라도 잔돈이 없었다.전부 사주고싶은 그때 기분이었다.
만리장성의 한자락이라는데...비가 오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올라가봐야지.. 그리고 사진에 담아야지...부지런히 성곽에 올라 한참을 올라갔다. 처음 올라선 문은 9호..8호문..7호문까지 갔다가 되돌아나오니 모두 버스에 올라타고 내가 마지막이었나부다.
13시30분경 단동시 북한식당에 도착했다.식사를 거의 마칠시간에 종업원 북한아가씨 둘이서 노래를 한다. 반갑습네다~~동포여러분..몇번 들은적 있는 이북노래..이어서 나의 살던고향..동요한곡도 부른다.다음은 노년층의 노래 타향살이..내어머니의 18번이다.
타향살이 부르는 그녀의 눈망울이 그렇게도 애절할 수가 없다.그 매력에 그리고 울 어머니의 애창곡을 불러준 그녀에게 팁 5,000원을 포켓에 넣어주었다. 식당에서 나와 압록강유람선을 타러갔다.비는 아직도 그칠줄 모르고 내리고 있었다. 태풍 맛사가 중국으로 올라온 모양이다.
압록강 유람선을 타고 끊어진 신의주 철교앞으로 다가간다.6,25때 폭격맞아 끊어진 철교뒤로 새로 놓은 철교 2개가 나란히 있다. 역사는 그곳에서 말없이 압록강을 내려다 보고 이제 자유경제무역지대와 함께 경제특구로서 교역이 활성화 될 것이라 하며 시베리아횡단철도와 한반도종단철도를 연결하는 동북아의 물류기지로 발전할 것이라한다.
철교앞에서 턴하여 북한쪽을 바라보니 영빈관이 보이고 선착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보인다. 손을 들어 인사해보지만..답례가 없다..그렇게..북한쪽을 쭈우욱 바라보며 유람선은 흐르고 있었다.다음 선착장에서 일하던 아저씨가 손을 들어 답례를 한다.반가웠다.
왜 우리들은 이렇게 가슴 아픈일을 겪어야하는건지...신이 내린 그 작은땅에 무엇을 나눌 수 있다고 나누어 버린건지...아무튼 겨레가 통일 하나의 길로 좋을 수만 있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겠다.
비내리는 압록강에서 40여분동안 모두는 무엇을 생각하였는가..참담한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면서...그래도 우리는 행복한시대의 행운아라고 현실에 감사해야겠다. 이젠 단동항으로 가기전 쇼핑쎈타에 들리는 일정이다.단동 압록강유람선선착장에서 출발하여 30여분 달리니 도착한 곳 북한쇼핑쎈타라하는데...사진에 보듯이 그냥 상점 비스무리한 쇼핑쎈타였다.
입구에는 농산물 참깨..검은깨..참기름..콩등이 쌓여져있고 가운데 윈도케스장에는 보석 시계등 악세사리가 진열되어있었고 벽쪽으로는 술 차 종류들이 진열되어 있었다.나는 우리회원들이 말한 들쭉술을 사기위해 둘러보았지만 없었다.
그래도 먼가 사가지고 가야할텐데...둘러봐도 마땅치않았다. 하여간 그래서 우짜든 죽통에 들은 술 2병을 샀다.. 죽짜는 죽짜니깡 ..ㅎㅎㅎ 살 것도 마땅찮은데..그래도 모두 먼가 잔뜩 사는가보다. 살림꾼 아짐들은 참깨에 참기름 사느냐 한보따리 가방이다.
하여간 쓰는사람 있어야 벌어먹고 사는 사람 있으니 능력대로 실컷 사길 바란다.. ^^그러다보니 예정보다 시간이 지체된 기분이다. 선착장으로 떠나는 시간이 오후4시가 다아 되었다. 3시까지 도착해야한다했는데..가이드가 서둘르지 않는다. 머~6시나 되어야 떠나는 배일테니 하고 생각했다.
이제 단동항은 30여분이면 도착한다고한다. 그런데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정차한다.앞차 1호차에서 대장이 온다. 안내말인즉,돌발상황이 벌어졌습니다.태풍으로 인해 배가 출항을 못한다고 지금 어떤버스가 되돌아온다고...아니..무신소리를..
일개여행사가 사전에 그런 파악을 못해서 다른사람들이 되돌아나오는 것을 보고 그제야 정보를 안다니..납득부족이다. 모두 웅성웅성..그러면서 여기까지 왔으니 선착장까지가서 확인하고 옵시다. 하여 버스는 단동항구까지 갔다.
항구의 식당이나 가게집은 벌써 문을 닫아 조용한 분위기였고 터미날도 자물쇠로 굳게 닫혀있었다. 우리들은 모두 하차...터미날입구에 서서 떠들기시작했다.
시간이 얼마 흐른 뒤, 대장이 안내말을 한다.내일(오후5시50분) 비행기로 떠날 수 있는 좌석이 40개 확보했다고한다.그런데 비행기삯과 하루 숙식비 더해서 30만원 추가비용이 든다고한다. 이틀후 배로 떠난다면 2틀 숙식요금이 65,000원 추가비용으로든다하는 두가지 상품으로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뱅기라도 가야한다는 사람..이틀 더 머무르고 가겠다라는 사람등으로 의견이 엇갈리기시작...그런데 자리는 40좌석이니..57명중 추려야한다는 것이 아닌가...그런데 또 조건이 있다. 조별 단체비자로 14명이 함께 행동해야한다라는..만약 1조에 뱅기로 갈사람과 배로 가야할 사람이 있다면 어느 한쪽으로 결정하여서 함께 행동해야한다라는..그럼 누군가가 양보를 해야하고...그런 이유 때문에 갑자기 소란해졌다.
그런데 회원 중 누가 아는 여행사에 연락해서 알아보았더니 뱅기자리가 오전10시에도 있고 오후엔 아주 많다고한다.그래서 대장에게 그 사실을 말했다. 그러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한다.(조인되어있는 애니콜여행사이겠지)
그러더니 전원자리가 확보된다고...참나원..무슨 경우인지...속셈이 먼지...등등..여행사의 신뢰가 무너지는 시간이었다.
이젠 비행기는 비행기인데..오전비행기와 오후비행기로 또 갈등..그러던 중 오전 자리는 얼마안남았다라는..누군 오전비행기로 가고 오후로 가고..그 대목에서 내가 나섰다.
어차피 그간 함께 행동한 것이니 갈 때까지 단체행동합시다..하며 오후 비행기로 가자고 나서서 큰소리로 말했다.. 모두 긍정으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그 자리에서 결정을 했다.
사실 비용에 있어 30만원이 추가된다라는 것은...대충의 가격이었을테고...그부분은 낸중에 결정하면 되리라고 나는 믿고 있었다.
비행기를 타자면 심양으로 가야한다..그런데 여행사측의 사정으로 단동시에서 숙박하기로했다.시간은 오후 5시가 넘었고.. 단동시에 있는 단동인터내셔날호텔로 도착했다.
오후6시에 도착.. 짐을 풀고 오후7시20분까지 로비로 모이라는 안내를 받고 우리들은 방으로 돌아갔다.그리고 우리팀 13명이 내방으로 모였다.이일에 대한 부당한 것들에 대하여 논의했다.(복잡한관계로 이문제는 생략) 다만, 토지개발공사팀대장과 나중에 의논하여서 여행사측에 우리들의 요구조건을 말하기로했다. 모처럼 여유있는 저녁시간인 것 같다. 샤워를 하고 일찍 로비로 내려갔다.호텔주변을 돌아보려했지만...이미 갔다 온사람이 별로 볼 것이 없다하여 그냥 로비로 가서 앉았다.
시간이 되어 가까운곳으로 저녁식사를 하러갔다. 오늘밤은 불고기판이다. 그리고 술이 널널하게 들어온다. 걍~~ 그럼 오늘밤은 나도 좀 취해볼까나~ 밥은 안먹고 고기와 술로 옆사람들과 너스레를 까면서 주는대로 술을 받아마셨다. (근데 안취함 ㅎㅎㅎ)
개인적으로는 여행길에 모처럼 여유있는 이런 저녁시간이 나로서는 좋았다. 하지만 모두 잘 모르는 사람들이고하니 조심스럽고...토지개발공사대장 자리에 가서 간단한 인사를 나누는데.. 중국측 여행지사장이 호텔로비로온다한다... 그래서..이일에 대한 협의가 있다하여 더 이상 술을 안마시고 자제하는 듯 했다.
식사시간이 끝나고 호텔로비로 갔다. 나는 좀 취기가 있어 협의하는 자리에 안갔다. 시간이 길어지는 듯했다.어느정도 이야기가 진전되었겠지..할 때 나는 그 자리로 가서 앉았다.
아직도 실갱이..지사장이란 사람의 태도가 영 맘에 안든다.하여간 누구든 감정이 오를땐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천재지변이야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배가 출항 못하는 정보는 진작 알아서 대처를 했어야할 여행사측의 불차례와 비행기자리가 있는데도 40좌석밖에 없다고 말한 것등의 우리들의 불쾌함을 말하고 그것에 대한 해명을 요구한 것으로 아는데...
내가 앉아서 참견할 때의 전개는 어차피 이렇게 된거 내일 심양비행장으로 갈 때 도중 유명한 관광지가 있으니 2군데 관광을 시켜주고 30만원으로 하면 어떠냐..지사장은 35만원으로 말하고 있었고 돈을 흥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배값에 대한 환불에 있어서는 지사장의 답변이 환불 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한다..그것은 중국측에서 어떻게할지 모른다라는..이 부분이 또 납득부족
하여간 그것은 나중에 따져도 될 문제..일단 우리는 중국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우선..30만원과 35만원의 문제로 침묵을 지키고 있는 순간에 내가 나섰다.
"지사장님 시간도 늦고하니(밤11시경) 이렇게 된거 우리도 사실 부담이 큽니다. 여행사측에서도 좀 양보해 주시고해서 30만원에 해주세요~"
금방 지사장이..알았다고..그렇게 하자고..하여 협의시간은 종료..방으로 돌아갔다.그자리에서 이것저것 따지다보면 시간만 늘어지고 마무리가 안될 것 같았다. 내 속생각은 30만원? 택도 없는 야그지..상식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야..글고 배값을 환불 못받을 수도 있다고? 그것도 납득부족...그러나 우린 한국으로 돌아가야해..가서 따져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다.
요즘같은 세상 넷티즌들의 위력은 강하다.그리고 정당성에 대한 이사회는 공정하다.여차해서 부당한 이익을 우리에게 요구한다면 나는 인터넷에 올린다고했다. 그러한 나의 생각을 이해 못하는 친구가 있었다. 지사장과 약속은 약속인데..인터넷에 올리면 어떻하냐고...걱정을 한다. ^^
돌아와서 결정된 사실이지만 16만원선에서 결정되었다고 한다.아마도 30만원을 다 받았다면 나만이 아니라 다른팀 넷티즌들도 가만 안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섯째날(8월10일)
06시 기상.. 마지막 중국에서의 하루가 시작이다..07시30분 스카이에 있는 뷔페식당으로 갔다.창가로 식탁이 놓여져있고 우리나라에도 있는.. 식당자리가 천천히 돌아간다.중국에서의 화려한 모닝식사였다.
09시가 다되어서 출발...심양공항으로 가는 중간쯤 본계수동굴이라는 곳에 들렸다.심양에서 40키로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고하는데..지금으로부터 약 45만년 전에 형성된 대형 석회암 동굴이다.
전체길이는 약 3km이며, 세계적으로 가장 긴 석회암동굴이다. 일반 동굴로서 세계에서 가장 긴 것은 미국에 있는 것으로서 555km나 된다고 한다.
본계수동굴은 동굴 안으로 강물이 흐를 정도로 규모가 크다. 수심은 평균 2m이고 가장 깊은 곳은 7m이다. 한여름인데도 내부가 추워서 무료로 빌려주는 조끼를 걸쳐 입어야 했다. 약 50분 정도 배로 유람하면서 동굴내부를 구경하였다. 내부에는 형형색색의 대형 종유석 석순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많이 찍었지만.. 어두워서 깨끗이 안나와 2장 정도만 올렸다.
심양의 어딘가 고궁에 들린다고했는데.. 시간이 없다. 취소하고 심양에 있는 만두로 유명하다라는 식당으로 갔다. 만두는 한판에 20개씩 들어있었고 만두의 속도 몇가지씩 다른 만두가 식탁에 올라왔다.그리고 지금도 삼삼하게 그리운 것은 찐빵이었는데..달지도않고 찐빵을 기름에 튀긴 것이었다.
선물로 가지고 오고싶어서 주문을 했는데..많이 기다려야한다고 안된다고한다.식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나왔는데 버스가 가지를 않는다. 여행사직원이 비행기표를 가지고온다해서 기다려야한다고 한다.
▶기다리는 동안 심양에 대해서 잠시 알아볼까요? ^^
청태조 누르하치가 후금을 세워 처음 수도로 정한 곳이다. 그 후 태종이 후금에서 청으로 국호를 바꾸고 수도를 북경으로 옮겼다. 이후 심양은 봉천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알려진 도시이다.
2,000의 역사를 가진 도시이며, 한때는 고구려의 영토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는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일찍이 요녕성의 성도로서 1900년 이후 제국주의의 침략이 시작되지 일본에게 짓밟히기 시작했고, 1931년에는 만주 사변의 기지가 되었다. 이후 일본의 중국 침략이 근거지가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심양이라는 이름으로 해방되었다.
여행사 직원이 오고 이제 심양공항으로 버스는 달린다.비행기표를 가지고 온 가이드가 공항까지 갈 동안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열심히 이런저런 엽기유머등 우리를 즐겁게 해주려고 마이크를 잡고 말한다.
그는 이북이 고향이며 북한에서 학교를 나오고 지금 여행사에서 근무한다고한다.말하는 것에 비해 반응이 없는 여러분들.. 나라도 열심히 들어주고 호응해주자하고 큰소리로 네~~ 하고 대답도하고 웃기도 하고 했다.. 참 우리나라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에게는 웃음에 인색하고 칭찬에 인색하다.
나름대로 우리들에게 기쁨을 주려고 열심인 가이드에게 친절해지고 싶다.공항에 도착하고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도 여러분은 무반응..박수치며 수고했다고 하자.. 여러분이 따라서 박수를 친다..그리고 가이드는 중국어로 수고했다라는 말이 씽쿨라~?(맞나?)라고말하면서 운전기사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부탁한다.
얼마나 많은 분이 운전기사에게 하차하면서 인사했을까? 웬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고생했는데.....배운대로 운전기사에게 인사를 하고 오늘 본 가이드에게 수고했다고 캔커피 하나를 건넸다.
모두들은 짐을 꺼내기가 무섭게 공항안으로 간다.남아있는 버스와 운전기사를 바라보며다시한번 인사하려했지만 버스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켜보아도 운전기사에게 인사하는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서비스가 잘 못했다하더라도...)
여행을 하면서 저마다 느낌이 있었을테지만..우리가 해외에 나왔을때에는 민간 외교관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
공항안으로 들어서니 이륙 1시간전...올 때처럼 조별로 줄서서 세관을 통과하고 시간에 맞추어 비행기에 올랐다.1시간 30분 가량 날아 도착한 인천공항... 하늘이 구멍이 났나 싶을정도로 장떼비가 내린다.춘천에 산악회친구들한테 차량대절비 10만원 지불하고 춘천에 도착하니 0시가 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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